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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 남을 고치느라 바빠, 자신은 고치지 않는다

iDiMi-그레이스 — 남을 고치느라 바빠, 자신은 고치지 않는다

‘도그빌’을 다시 본 뒤, 라스 폰 트리어의 ‘미국 3부작’ 두 번째 작품 ‘맨더레이’도 이어서 보았다. 이번에 그레이스를 연기하는 이는 니콜 키드먼이 아니라, 더 젊고 순진한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다.

‘도그빌’과 마찬가지로 그레이스는 다시 한 번 공동체 전체와 맞선다. 다만 각자 꿍꿍이가 있던 도그빌 주민들과 달리, 맨더레이 플랜테이션의 흑인들은 한 몸처럼 뭉쳐 있다. 이들이 당분간 주류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끝에, 그들은 맨더레이 내부에서 기생적 삶을 택했고 ‘백인 꼭두각시’를 필요로 한다. 바로 그때 이상적인 표적인 그레이스가 나타난다. 백인 노부인은 친절하게 그 책을 태우라고 경고하지만, 그레이스는 도덕적 확신에 차서 ‘선한 노예주인 따위는 없다’고 단정하며, 노부인이 백인의 흑인 지배를 입증하는 증거를 없애려 한다고 믿는다.

젊은 흑인 여성이 도움을 청하는 순간부터 그레이스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겉으로는 연약하고 비굴하며 무지해 보이는 이 집단이 꾸민 덫 안에 내내 갇혀 있다. 맨더레이는 그레이스를 위해 맞춤 제작된 무대가 되고, 그녀는 해방시키려 애쓰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제자리걸음을 한다.

이상에 불타는 젊은 그레이스는 먼저 백인 노부인의 침대 곁에서 흐느끼는 늙은 흑인 노예의 연기에 속아 그들이 몸과 마음 모두 완전히 노예화되었다고 오해한다. 실상 그는 ‘백인 꼭두각시’를 잃은 사실을 탄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어서 그녀는 ‘먹기만 하고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아와 노파를 제거하는 ‘집행자’로 이용된다. 마지막에는 가장 교활하고 도박을 즐기며 게으르고 호색적인 티모시를 감싸기 위해, 목화 대금이 도박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

진실이 마침내 드러났을 때, 그레이스는 조금은 성숙해지고 맨더레이를 벗어난다.

속아 넘어간 것은 그레이스만이 아니다. 딸을 지나치게 믿은 아버지는, 속임수에 당해 모욕감을 느낀 그레이스가 흑인 노예를 채찍질하는 장면을 보고, 그녀가 권력을 휘둘러 노예를 벌할 줄 알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그는 안도하며 발길을 돌린다.

보는 것이 곧 믿음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남이 보여 주고 싶은 것일 수도, 우리 마음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그레이스처럼, 매일 남을 고치려 들면서도 정작 자신을 고치는 일에는 소홀하다.

게시일: 2025년 9월 28일 · 수정일: 2025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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