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백

나는 창완녠이다. 2004년, 나는 감옥에 갔다. 불법 경영과 고의 살인 혐의였다.
나는 이 산골에서 태어나 자란 양치기였다. 어릴 때는 산등성이를 넘나들며 양을 몰았다. 그 시절, 산은 푸르고 물은 맑았으며,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훗날, 우리 집은 집안의 양을 전부 팔아 나를 산 밖으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나는 사회에서 약간의 성취를 이뤘다. 10년 전, 산 아래에서 석탄이 발견되었고, 나는 다시 이 산으로 돌아와 ‘검은 금’을 캐기 시작했다.
그 해, 나는 가진 모든 자산을 들여 몇몇 마을과 산림 양도 계약을 체결했고, 채굴권을 얻었다. 대부분의 농민은 쉽게 설득되었다. 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이 ‘석탄의 바다’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몇몇 고집 센 젊은이는 서명을 거부했다. 내 부하인 다진은 칼을 들고 그 청년을 위협하려 했다. 나는 그를 말렸다. 우리는 같은 고향 사람들인데 칼과 총을 쓰는 건 체면이 아니다. 대신 나는 마을 이장에게 몇 백 위안을 주고, 마을의 어른들을 샤오딩 양고기 식당에 초대해 그 청년도 불렀다. 이장 놈은 영리하게도 몇 마디 말로 분위기를 몰아가 서명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압박했다. 결국 싸움이 벌어졌고, 그 청년은 양뼈로 식당 주인 샤오딩의 한쪽 눈을 찔렀다. 그는 결국 서명했다. 배상을 위해 그는 인근 현으로 가서 탄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몇 년을 갚아야 할 것이다.
그 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환경청, 안전감독, 이장 모두 내 친구가 되었다. 고기 한 점 던져주면 시키는 대로 했다. 탄광 입구에는 매일 석탄을 실은 트럭이 줄을 섰다. 때로는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예전의 푸른 산과 맑은 물은 다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캐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캘 것이다.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나는 초등학교를 개조해 주었다. 교장 선생님, 내가 예전에 배우던 국어 선생님은 여러 번 아이들 앞에서 연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낯짝이 없었다. 학교에 가도 연단에 오르지 못했다. 아이들은 지금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이 산을 떠나면 분명히 나를 욕하게 될 것이다.
시장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나는 시내 번화가에 가장 높은 건물을 세웠다. 이름은 ‘부의 중심’이라 지었고, 최상층은 내 사무실로 썼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방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내 전시실. 크지 않은 방이지만, 내가 석탄광 인근 산에서 석궁으로 사냥한 검은 곰, 독수리, 사슴, 부엉이 등 수십 종의 야생동물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산을 여러 개 무너뜨렸고, 수맥도 끊었다. 새와 짐승은 모두 도망쳤고, 사냥은 점점 어려워졌다.
(※ 본문이 매우 길기 때문에 여기서 중단되며, 원하시면 “계속”이라고 입력해 주세요. 나머지 번역을 이어 드립니다.)